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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제1권

제2권

제3권

제7장 인민의 세상
(1933. 2-1934. 2)

1. 보금자리

2. 낮에는 적의 세상,
밤이면 우리 세상

3. 쏘베트냐, 인민혁명정부냐?

4. 국제당파견원

5. 백마에 대한 추억

제8장 반일의 기치높이
(1934.2-1934.10)

제9장 제1차 북만원정
(1934.10-1935.2)

제4권

제5권

제6권

제7권

제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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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백마에 대한 추억

나는 원래 이 삽화를 세상에 공개할 의향이 없었다. 인생 80을 총총히 더듬어보는 이 글에서 군마 한마리가 차지하는 몫이란 사실 보잘것없는것이다. 회억해야 할 영웅들은 얼마나 많고 은인들은 얼마나 많으며 사연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 일화를 나만 아는 비밀로 묻어두기에는 백마에 대한 나의 추억이 너무도 애틋하고 그것을 소개하지 않고는 못견딜 충동이 너무도 강렬한것 같다. 더구나 그 백마는 많은 사람들과 잊을래야 잊을수 없게 인정적으로 굳게 얽혀져있다.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비밀로 남겨두기에는 아까운 일이다.

나에게 군마가 처음으로 생긴것은 1933년 봄이였다.

하루는 십리평인민혁명정부 일군이 그 일대에 주둔하고있던 유격대동무들과 함께 백마 한필을 앞세우고 나를 찾아왔다. 그 당시의 왕청대대지휘부는 소왕청 마촌 리수구골짜기에 있었다. 한마리의 백마를 위한 행차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수행규모가 요란하였다. 십리평사람들은 지휘부앞 뜨락에 말을 매여놓고 그 뜨락으로 나를 불러냈다.

《험한 길을 많이 걸으시는 김대장께서 타시라고 저희들이 말 한필을 삼가 증정하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십리평인민혁명정부 일군이 일행을 대표해서 하는 말이였다.

나는 이 대표단의 돌발적인 출현과 큰 행사라도 치르는듯 한 엄숙한 례절앞에서 몹시 어리둥절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개 분대인원을 훨씬 초과하는 그 어마어마한 수행규모는 처음부터 나를 놀라게 하였다.

《이거 대접이 너무 과한것 같습니다. 나이 갓 스물에 백마를 타고 다니게 되였으니 호강이 지나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런 말로 겸양의 뜻을 표시하자 나이 지긋한 십리평의 일군은 펄쩍 뛰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대접이 과하다니요. 왜놈들은 대대장만 되여도 장교랍시고 말을 타고 거들먹거린다는데 우리 빨찌산지휘관들이 그놈들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전책을 보니 홍의장군 곽재우도 말을 타고 의병을 지휘했다더구만요. 군사를 지휘하려면 뭐니뭐니해두 위풍이 있어얍지요.》

《이건 어디서 생긴 말입니까? 혹시 어느 농가에서 쓰던 역마가 아닙니까?》

십리평의 정부일군은 두팔을 황황히 내저으며 내 말을 부정해버리였다.

《역마라니요. 그럴리가 있습니까. 이건 역마가 아니라 관상마올시다. 일전에 십리평에서 정부위원으로 선출되였던 그 머슴군출신령감이 생각나십니까?》

《생각나구말구요. 내가 그 로인을 위해서 지지토론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그 령감이 김대장에게 드리는 선물이올시다.》

《그 로인에게 이런 멋진 말이 있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데요.》

나는 안장에 등자까지 걸린 백마를 유심히 살펴보고 쓸어보면서 넌지시 이런 말을 꺼냈다. 아무리 보아야 그 백마는 역축으로 써오던 농경마가 틀림없었다. 십리평과 같은 골짜기에 관상마를 가진 농사군이 있다는것은 잘 믿어지지 않았다. 지주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로인이 그처럼 호함진 백마를 관상용으로 가지고있었다니 더 허황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십리평의 정부일군은 그냥 관상마라고 고집하였다. 역마라고 실토하면 내가 받아주지 않고 되돌려보낼것 같은 걱정이 들었던 모양이였다.

나에게 백마를 선물한 머슴군출신의 그 로인이름이 무엇이였던지 지금은 기억에 삭막하다. 다만 성이 박씨였던 생각만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박로인이 나에게 백마를 선물한데는 무심히 스쳐들을수 없는 감동적인 사연이 있었다.

이야기는 그가 머슴살이를 끝내고 지주집에서 나오던 때로부터 시작된다. 박로인이 늙마에 제구실을 할수 없게 되자 지주는 그를 집에서 내보내였다. 그때 지주가 로인에게 품삯대신 준것은 자기 집 마구간에서 출산한지 몇달 안되는 털빛이 새하얀 망아지였다. 출산직후 엄지에게 깔려 심한 타박을 당한 그 새끼말은 바깥세상에 나와 뛰여다니지도 못하고 마구간에서 불우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는데 기력도 쇠약하고 영양상태도 보잘것없었다.

참혹하게 병든 말, 오늘 죽을지 래일 죽을지 모르는 산 송장과 다름없는 새끼말을 주면서도 린색한 지주는 선심을 쓰는체 하였다.

박로인은 병든 말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수십년동안 지주를 위해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고역을 치러온 봉사의 대가가 그 새끼말이라고 보면 인생이 통털어 너무나도 허망하고 세상인심이 너무나도 야박하지 않느냐 하는 슬프디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슬하에 일점혈육도 없이 외토리로 고독스럽게 살아가던 박로인은 그 망아지를 장중보옥처럼 끔찍이 아끼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돌봐주었다. 망아지는 자라서 어엿한 백마가 되였다. 그는 고독이 엄습할 때마다 백마의 곁에 찾아가서 푸념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한탄도 하였다. 백마는 그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아들이였고 딸이였고 친구였다.

일생을 천덕꾸러기로 살아온 박로인은 자기를 말이나 소와 같은 역축과 동렬에 놓고 세상의 온갖 푸대접을 응당하고 자연스러운것으로 받아들이였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람답게 대하면 그는 오히려 불편해하거나 송구스러워하였다.

그런데 이 로인이 십리평유격구에서 정부위원으로 선거된것이였다. 그날 그가 받아안은 감격이 얼마나 컸고 그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 하는것은 여기서 루루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감격은 바로 그날 저녁 정부마당에 로인이 친히 끌고온 백마가 무언으로 설명해주었다.

《회장어른, 나를 대신해서 이 백마를 김일성대장에게 드려주시오. 내 오늘 난생처음 그분의 덕으로 사람대접을 받아봅니다. 흉중에 가득한 고마움을 표시할 길이 없어 몇해를 두고 살찌워온 이 애마를 드리오니 제 심정을 잘 말씀드려주시오.》

이것은 인민혁명정부 회장에게 한 박로인의 부탁이였다.

이런 사연까지 듣고나니 그 백마를 사양하기도 딱하였다.

《거절하고싶지만 사연이 하도 절절하니 고맙게 받아들인다고 로인에게 전해주십시오. 그런데 몰이군 한분만 오면 될 길을 왜 이렇게 많은분들이 왔습니까?》

나는 십리평정부일군에게서 말고삐를 넘겨받은 다음 일행을 향해 두루거리로 물었다.

《김대장어른이 마상에 오른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어 군대와 인민이 대표를 뽑아가지고 왔습니다. 대장어른, 어서 말안장에 오르십시오!》

십리평인민혁명정부 일군이 정색해서 하는 말이였다. 2중대 대원들도 그에 합세해서 마상에 오르라고 성화를 먹이였다. 내가 말에 오르는것까지 보고서야 그들은 흡족해서 십리평으로 돌아갔다.

박로인의 성의와 공경심은 이를데없이 고마왔지만 나는 며칠이 지나도록 그 백마를 타지 않았다. 내가 말을 타고 호강하게 되면 인민들이 나를 곱지 않게 볼수 있고 대원들도 지휘관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질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기때문이였다.

나는 병기창에서 일하는 리응만에게 그 말을 주었다. 브로닝권총 한상자를 사가지고와서 유격대에 입대하였다는 그 리응만이다. 아주 담대하고 용감한 사나이였는데 그만 아래다리의 총상자리가 말썽을 일으켜 다리를 잘랐다.

리응만의 다리를 수술한 사람은 소리수구 대대병실근처에 자리잡고있던 유격구병원 의사 장운포였다. 그는 소왕청의 의학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인물로서 내과도 보고 외과도 보는 만병통치의 의사였다. 의사가 한명밖에 없으니 혼자서 이것저것 다 치료하였다.

그 당시 유격구병원의 관리를 담당한것은 호조회였고 환자들의 파견장에 도장을 찍어주는 사람은 인민혁명정부 회장이였다. 이 호조회가 의사협의회를 대신하는 권한을 가지고 총알에 뼈를 다친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일률적으로 수술을 하라는 결정을 채택하였다. 약품도 없고 특별한 치료대책도 없다보니 그렇게 극단적인 결정까지 만들어내지 않을수 없었다.

장운포는 시계태엽으로 칼을 만들어 리응만의 다리를 잘랐다. 이렇게 되여 리응만은 유격대활동에 참가할수 없는 불구가 되였다. 그는 퇴원후 한동안 병원근처에 있는 량성룡의 집에 머물러있으면서 그의 어머니의 간호를 받았다.

리응만은 내가 준 백마를 요긴하게 타고다니면서 병기창생활을 아주 보람차고 명랑하게 하였다.

얼마후 나에게는 또 다른 한마리의 백마가 생기였다. 그 백마는 대황구전투때 우리 부대가 일본군부대를 치고 로획한 말이였다. 전각루전투에서 로획한 말이라고 회상하는 투사들도 있다는데 나는 구태여 그것을 부인할 생각이 없다. 어디에서 생긴 말인가 하는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것은 우리의 수중에 일본군장교가 타고다니던 말이 생겼다는데 있고 그 말이 만사람의 인기를 끄는 나무랄데 없는 군마라는데 있는것이다.

그때 우리는 매복전을 조직하였는데 그 백마의 임자인 일본군장교가 운수사납게도 첫번째 과녁이 되여 말잔등우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주인을 잃은 백마가 적진으로 달아나지 않고 우리 지휘부가 차지하고있는 산비탈로 곧추 다가왔던것이다.

조왈남전령병은 백마가 나타나자 지휘부가 적의 목표물로 될것 같아서 그 말을 자꾸 신작로쪽으로 쫓아버리였다. 전령병이 나무드덜기와 탄피까지 집어뿌리였지만 짐승은 자기 주인의 곁에 돌아가지 않고 다시 우리한테로 오군 하였다. 나중에는 네 다리를 떡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조차 않았다.

《가지 않겠다고 버둥질하는 짐승을 쫓아버리면 되겠나. 푸대접도 분수가 있지.》

나는 조왈남을 나무랐다. 그리고는 얼마동안 말갈기를 쓰다듬어주었다.

전령병은 몸으로 나를 막아서며 겁에 질려 소리쳤다.

《적의 주의가 지휘부쪽에 쏠리는데 어쩌자고 그러십니까!》

《허허, 그놈들이 지금 지휘부를 가려볼 경황이 됐나. 벌써 저렇게 줄행랑을 놓는데.》

물론 말은 유격대의 로획물이 되였다.

대원들은 일본군장교를 위해 봉사하던 말이 우리한테로 의거해온 사실에 처음부터 신비스러운 색채를 부여하려고 애썼다.

《이놈의 짐승이 조선사람과 일본사람을 가려볼줄 알거든. 우리가 조선사람이라는걸 판단하고는 서슴지 않고 의거를 단행하지 않았나.》

마패를 보고 백마의 출산지가 경원(새별)이라는것을 알아낸 대원들이 하는 말이였다.

다른 대원들은 그보다 더 신빙성있는 의거동기를 찾아냈다.

《일본군장교가 평상시 말을 혹심하게 학대한것 같애. 그렇지 않고서야 이놈의 짐승이 자기 주인이 너부러지기 바쁘게 우리한테로 넘어올리가 있나.》

우리는 전투장에서 철수하여 마촌으로 돌아올 때 역축으로 쓰라고 어떤 중국로인에게 이 백마를 주었다. 간도땅에서는 소와 함께 말도 역축으로 널리 리용되였다.

그런데 그후 얼마 안되여 로인은 우리 부대에 찾아와 말을 되돌려주었다. 발목이 너무 가늘고 연약해서 역축으로는 쓸모가 없다는것이였다. 게다가 성미도 이만저만 괴벽스럽지 않다고 하였다. 자기 같은것은 가까이에 범접 못하게 하니 도무지 다룰수도 없고 휘여잡을수도 없다는것이였다.

나의 전우들은 그 말을 듣고나서 《아무래도 이 말은 우리한테 있을 팔자야.》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나의 배장근통을 걱정해주면서 말을 타고다니라고 권고하였다. 한두해에 끝날 유격전쟁도 아닌데 아픈 다리를 그렇게 혹사하다가는 영영 주저앉을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 배장근통때문에 나는 사실 그 당시 행군할 때마다 큰 불편을 느끼군 하였다. 어려서부터 걸음을 너무 많이 걸은데서 온 병인지도 모르겠다. 길림시절에는 간혹 기차도 타고 자전거 같은것이라도 타고다녔지만 항시적인 봉쇄상태에 놓여있는 왕청골안에서는 그런 호사를 바랄수도 없었다. 산발을 타고 하루에도 수십수백리씩 강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유격구생활은 걸음을 자유롭게 걷지 못하던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육체적부담으로 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전우들의 청을 사양하였다.

이렇게 되자 전우들은 당회의를 열고 아무아무날부터 김일성동지는 말을 타고다닐것이다 하는 결정을 채택해버리였다. 그들은 량성룡대대장까지도 말을 타고다니게끔 결정서를 아주 묘하게 꾸며놓았다. 혼자서 말을 타고다니라고 하면 내가 기를 쓰고 반대할것이라는 점까지 미리 타산했던것 같다.

조직의 결정이니 더 거역할수 없었다.

처음 말을 타는 날 전우들은 우리를 에워싸고 손벽을 치면서 기뻐하였다.

마적부의 기록을 보니 경원군마보충부 출산이라고 적혀있었다. 때로는 뿌잇뿌잇하게 재빛으로도 보이고 때로는 백설같이 새하얗게도 보이는 날씬한 말이였다. 발굽이 경마용처럼 가늘었는데 뛸 때에는 비호처럼 날래였다.

이 말이 나를 한 2년쯤 태우고 싸움마당에도 나갔고 때로는 사람의 발자취마저 닿아본적 없는 천고의 밀림속으로도 다니면서 우리와 함께 온갖 경난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말이 이따금씩 추억속에 나타나 내 가슴에 짜릿한 정서를 부어주군 한다.

나는 하루일과를 말관리로부터 시작하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말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비자루로 털에 낀 먼지를 털어주기도 하였다. 관리경험이 없고 요령도 없으니 만경대할아버지가 소를 거둘 때 비자루로 이곳저곳을 쓸어주던 모습을 기억에 되살리며 그 방법을 모방하는것이였다.

그런데 백마는 비자루가 몸에 닿을 때마다 내곁에서 달아나군 하였다. 내가 백마와 한창 싱갱이질을 하고있을 때 리치백로인이 쇠로 만든 빗을 나에게 주면서 그것으로 한번 등을 긁어주면 알 도리가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그 쇠빗으로 등부터 긁어주었더니 말은 땅에 발통을 붙이고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말잔등에 안장을 얹다가 안장의 가죽과 모달리천사이에서 자그마한 주머니를 발견하였다. 그 주머니안에는 마적부라는 자그마한 수첩과 함께 쇠빗, 털빗, 걸레쪼박, 쇠꼬챙이와 같은것들이 들어있었다. 쇠빗, 털빗, 걸레쪼박의 용도는 짐작만으로도 알수 있었지만 끄트머리가 수술칼처럼 생긴 쇠꼬챙이의 용도만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나는 쇠꼬챙이를 들고 백마의 곁으로 다가갔다.

기적은 그 다음순간에 일어났다. 백마가 곡마단의 말처럼 한쪽 발을 건뜻 쳐들었던것이다. 이것은 쇠꼬챙이와 발통사이의 관계를 말해주는 어떤 암시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 좀처럼 짐작할수 없었다.

말은 내 주위를 안타깝게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먼발치에 박혀있는 말뚝곁에 다가가 그우에 앞발 하나를 걸터놓았다. 발바닥의 마제짬에는 흙, 돌쪼각, 짚오래기들이 잔뜩 끼여있었다.

쇠꼬챙이로 그것들을 파주었더니 말은 다른 발통을 올려놓고 능청스럽게 내쪽을 바라보는것이였다.

이처럼 어림짐작으로 말사양법을 익혀가고있을 때 국내종마장에 있는 사람이 소왕청 친척집에 왔다가 나에게 말사양의 묘리와 승마요령을 대주고 돌아갔다. 그가 하는 말이 말은 몸에 먼지가 앉거나 발통에 사금파리 같은것이 끼는것을 제일 싫어하기때문에 하루에 두번정도씩 깨끗한 물로 씻어주고 쓸어주고 긁어주고 기름까지 발라주어야 하며 발굽에서 흙이나 검불 같은것을 제때에 파내주어야 한다는것이였다. 특히 말이 비를 맞거나 땀을 흘리면 물기를 잘 닦아내야 한다고 하였다.

말의 사료중에서 제일 중요한것은 건초와 귀밀이라는것, 보리와 콩도 좋은 사료라는것,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도 매일 소금을 조금씩 먹어야 한다는것, 과도한 운동을 한 후에는 찬물을 많이 먹이지 않는것이 좋다는것도 그 종마장사람이 나에게 가르쳐준 하나의 비결이였다.

이런 과정에 나는 백마와 친숙해졌다. 말은 내 요구나 의사앞에서 늘 고분고분하였다. 나의 눈빛이나 손동작만 보고서도 자기가 할바를 미리 알아차리고 그에 맞게 봉사를 따라세우는 백마의 총기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저것이 과연 사람이 아니고 말이란 말인가 하고 만사람이 다같이 경탄할 정도로 백마의 성미나 행동에서는 예술적으로 완성된 어떤 하나의 인격미를 련상시켜주는 면모를 종종 엿보게 되는 때가 있었다.

그런데 백마는 령리하고 충실한 반면에 성질이 매우 사나왔다. 그 말은 주인 아닌 남이 자기를 건드리거나 안장에 올라타는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어떤 싱검둥이가 말을 타고싶어 고삐를 잡으면 빙빙 돌면서 타지 못하게 하였으며 지어 뒤발질을 하거나 물려고까지 하였다.

조왈남도 백마를 타보려다가 푸대접을 받았다. 처음에 그는 백마를 퇴마루밑에 세우고 빗으로 옆구리를 슬슬 빗어주다가 날파람있게 몸을 날리였는데 안장에 몸이 닿는 순간 말이 옆으로 후닥닥 내뛰는 바람에 땅바닥에 엉덩방아만 찧었다.

이런 참패를 맛본 후 조왈남은 아주 기발한 승마방법을 고안해냈다. 그 방법이란 발목까지 빠지는 시궁창에 말을 세워놓고 말이 풀을 뜯어먹는 사이에 슬쩍 올라타는것이였다. 하지만 그 방법도 조왈남을 도와주지 못하였다. 그는 이번에도 시궁창벼락만 뒤집어썼다.

어린 전령병은 백마를 나무에 비끄러매놓고 회초리로 그 분풀이를 톡톡히 하였다. 그후부터 백마는 조왈남이 곁에 나타나기만 해도 들고뛰거나 발길질을 하였다.

그때 조왈남은 너무 안타까와 울기까지 하였다. 자기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말이 곁을 주지 않고 태워도 주지 않으니 중대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였다.

나는 조왈남에게 백마가 너를 배척하는것은 백마에게 바치는 너의 지성이 모자라기때문이니 지성을 더 하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양마요령을 차근차근 대주었다.

조왈남은 내가 일러준대로 백마를 위해 있는 정성을 다 바치였다. 백마가 그 정성에 정성으로 보답한것은 물론 두말할것도 없다.

하도 오래전 일이여서 자질구레한 일화들은 거의다 잊어졌다. 그러나 몇가지 장면만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내 눈앞에서 살아움직이고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오백룡이 소대장으로 활동할 때였다. 나는 라자구지방에 가서 군중정치공작을 하기 위하여 오백룡소대를 데리고 마촌을 떠났다. 나의 수면시간은 하루 평균 2~3시간밖에 안되였다. 전투를 하고 훈련을 하고 군중과의 사업까지 하고나면 보통 밤 1시나 2시가 되여서야 잠자리에 들수 있었는데 일이 정 밀릴 때면 밤을 꼬박 밝히였다.

일행이 쟈피거우령에 들어선 순간 나는 말안장우에서 말뚝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전날 밤 마촌인가 십리평에서 밤샘을 한 후과였을것이다. 백마가 소대의 앞장에 있었으므로 일행중 내가 존다는것을 간파한 대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소대가 쟈피거우령을 넘을 때부터 말의 걸음걸이가 달라지더라는것이였다. 이것을 감촉한 사람이 바로 오백룡소대장이였다.

백마는 앞발을 딱 가두어붙이고 조심조심 올리막길을 톺아올랐는데 오백룡이 갑갑해서 짜증을 낼 지경으로 도무지 길을 축내지 못하였다.

(이 영국신사같은 말이 오늘은 참 별나게도 걷는걸.)

오백룡의 속생각이였다.

백마는 내리막길에서도 뒤발을 가두어붙이고 힘들게 령을 내리였다. 그러는 사이에 대렬은 멀리까지 앞서나갔다. 뒤에는 백마와 나, 오백룡 셋만 남게 되였다. 오백룡은 내가 걱정되여 줄곧 초초한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 상관이 앉아있는 말에 채찍질을 할수가 없어 속을 조이기만 하였다.

백마는 령길을 다 내리자 쟈피거우강가에 가로놓여있는 진대나무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진대나무 한대쯤은 헐하게 살짝 뛰여넘던 명마가 별치 않은 장애물앞에서 머뭇거리는것을 보자 오백룡은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백마가 저렇게 게으름을 부리는데 왜 욕도 안하고 재촉조차 하지 않을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잔등에 앉아있는 나를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에야 비로소 내가 졸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놈 참 명물인데!》

소대장은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떠들었다.

백마는 앞발로 진대나무를 딱딱 소리가 나게 두드렸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잠에서 깨여났다.

《이 백마한테 오늘은 특식을 차려줍시다.》

오백룡은 싱글벙글하면서 말갈기를 쓰다듬었다. 내가 조는사이에 무슨 천지개벽이라도 생긴 모양인가.

《갑자기 특식은 왜?》

오백룡은 백마가 쟈피거우령을 어떻게 넘었고 또 진대나무앞에까지 와서 어떻게 주춤거리였는가를 흥에 겨워 말했다.

《우리 아버지의 말씀이 옛날에는 나라에서 으뜸가는 말을 국마라고 했다는데 우리두 이제부터 이 백마를 국마라고 부르는게 어떻습니까?》

《왜 국마라고만 부르겠소. 백룡동무의 말을 듣고보니 천하마라고 해도 아까울것이 없겠는데…》

《천하마라는건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서 제일가는 말이란 뜻이지.》

《그럼 천하마라 부르는게 좋겠습니다. 전에 오중화형님이 그러는데 옛날 어떤 나라에서는 말에게 높은 벼슬자리까지 주었다지 않습니까.》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소. 어떤 나라 황제는 자기가 사랑하는 말에 집정관이라는 벼슬까지 주었다는구만. 그 말은 상아로 만든 구유에 먹이를 담아먹고 황금으로 만든 술잔에 술을 담아 마시면서 만사람의 경의를 받았다는거요. 그럼 우리도 령의정이라는 벼슬이나 주어볼가.》

《어쨌든 이 말은 명물입니다. 잔등판에 눈두 달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졸고계신다는걸 알아냈을가요?》

내가 고삐를 나꾸어채자 백마는 진대나무를 성큼 뛰여넘어 앞으로 쏜살같이 내달리였다. 우리는 잠간사이에 소대와 함께 라자구 삼도하자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강을 사이에 두고 바위가 량옆에 우뚝 솟아 쌍을 이룬 곳이 있었다. 그 강에는 산천어가 많았다.

나는 풀밭에 금을 그어주고 백마의 목에 말고삐를 감은 다음 대원들에게 군중정치공작임무를 주어 삼도하자, 사도하자, 로모저하로 파견하였다. 그리고나서 강기슭에서 대기하고있는 정치공작원들과 지하조직책임자들을 만나 그들과 오래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담화를 끝내고 백마가 있는 곳에 돌아간 나는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그어준 금안에서 백마는 아까처럼 그냥 착실하게 풀만 뜯어먹고있었던것이다. 아무튼 그 말은 보기 드문 명물이였다.

그 말의 덕으로 녀성혁명가 홍혜성도 사경에서 구원된적이 있다. 그는 국내에 있을 때 녀고까지 다닌 인테리였는데 룡정에서 선진적인 청년학생들과 함께 지하공작을 하다가 유격구를 천당으로 생각하고 왕청땅에 들어와서 정치공작을 벌리였다.

그의 아버지는 고려의술을 가진 명의였다. 홍혜성은 유격구에 들어온 다음 아버지한테서 배운 묘술로 유격대원들과 주민들의 옴병을 떼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유격구의 군대와 인민은 성미가 발랄하고 붙임성이 좋으며 고려의술까지 가지고있는 인테리출신의 이 아름답고 용감무쌍한 녀성정치공작원을 무척 사랑하였다.

어느 날 나는 백마를 타고 조왈남이와 함께 서대파라는 곳으로 지방공작을 나가다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급작스레 터져오르는 총소리를 들었다. 유격구에 《토벌대》가 들이닥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총성이 울리는 쪽을 향해 급보로 말을 달린 우리는 로상에서 뜻밖에도 지방공작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적의 매복에 걸려들어 힘겨운 조우전을 벌리고있는 홍혜성을 발견하였다.

적들은 악악 소리를 지르고 헛총질을 해대며 그를 사로잡으려고 발악하였다.

나는 전투현장에까지 백마를 다급하게 몰아간 다음 체포의 위기를 무릅쓰고 아슬아슬한 총격전을 벌리고있는 홍혜성을 말에 제꺽 올려태웠다. 말도 내뜻을 알아차렸는지 한 10리 길을 쏜살같이 냅다 달렸다. 이렇게 해서 그를 적의 추격으로부터 구원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유격구사람들은 입을 모아 나의 백마를 명마라고 칭찬하였다.

홍혜성이 만일 백초구에서 적의 《토벌》에 희생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와 함께 그 백마를 고맙게 추억할수도 있을것이다.

나는 이 말을 타고 량수천자일대에도 여러번 나가 그곳을 반유격구로 꾸려놓았다. 라자구, 삼도하자, 사도하자, 로모저하, 태평구와 함께 량수천자일대의 남대동, 북대동, 석두하자, 가재골일대와 도문근처의 마을들에는 우리의 조직이 다 들어가있었다.

이처럼 훌륭한 군마를 남에게 줄번 한 일도 있었다고 하면 아마 독자들은 잘 믿지 않을수도 있을것이다.

내가 그 백마와의 리별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불가피한 사정이 제기된것은 오백룡이네 대원들과 함께 골방령인가 어디에 나가서 지방공작을 하고있을 때였다. 보리고개를 넘기는 시절이라 마을사람들은 그때 농량이 딸려 고생을 하고있었다.

우리는 근처의 적을 쳐서 주둔구역 인민들이 먹을 식량을 여러차례에 걸쳐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로획한 식량만으로는 그 고장 사람들의 쌀에 대한 수요를 도저히 충족시킬수 없었다. 우리는 소비를 극력 줄여 저축한 쌀을 인민들에게 넘겨주는 한편 끼니를 번지지 않을 정도의 검소한 식생활을 하였다. 그러다나니 백마에게 차례지는 사료의 공급량도 최대한으로 줄이지 않을수 없었다. 귀밀이나 보리, 콩과 같은 고급사료도 고급사료지만 건초라든가 그것을 대신할수 있는 곡초를 구하는것도 역시 헐한 일은 아니였다.

충실한 나의 대원들은 백마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았다. 부대의 활동정황이 아무리 어려운 때에도 그들은 주변부락들과 적구에 종횡무진으로 드나들며 백마에게 먹일 귀밀이나 소금 같은것을 제때제때에 구해오군 하였다. 어떤 대원들은 가을걷이가 끝난 포전들을 돌아다니면서 이삭주이도 하였다. 한이삭, 두이삭 힘들게 모은 낟알들을 바수어 군복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와서는 말에게 먹이는 대원들도 있었다. 백마는 그런 대원들이 가까이에 나타날 때마다 주둥이로 군복주머니를 툭툭 건드리군 하였다.

대원들이 백마를 그처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한것은 다 나를 위한것이였고 나를 위해 바치는 혁명적우정의 표시, 충성심의 표시였다.

나는 그 우정과 충성심이 못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감정에서 헤여나올수 없었다. 그들이 열성스레 사료를 장만하거나 백마를 관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런 대접을 이이상 더 받아서는 안되겠다는 반사작용이 일어나군 하였다. 나는 남들의 봉사에 습관되지 못한 사람이였다. 빨찌산시절의 나의 개체생활에서 제일 송구스러운 때가 어떤 때였는가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대원들이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표가 나게 섬길 때였다고 대답할것이다.

남들한테 차례지지 않는 특대나 특혜가 차례질 때 나를 사로잡은것은 자신을 특수한 존재로 치부하는 그 어떤 우월감이나 자족감이 아니라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은 미안하고 죄스러운 감정이였다.

나는 채 완쾌되지 않은 배장근통때문에 몇달 더 고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원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나의 충성스러운 애마를 농민들에게 주기로 결심하였다. 백마가 반유격구 같은데 가서 역축으로 리용된다면 전장에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니 죽을 념려도 없을것이였다. 처음에는 나에게 백마를 보내준 십리평의 머슴군출신로인에게 나의 애마를 주면 어떨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로인이 별스레 생각하며 섭섭해할것 같아 그만 두었다.

나는 풍기사령을 불러다가 남아있는 사료를 다 털어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백마의 그날 점심급식은 특식으로 해주라고 지시하였다.

《오늘은 저축했던 사료가운데서 제일 좋은것으로 백마를 배불리 먹이시오. 오후에는 그 백마를 산너머 부락에 가지고 가서 그 마을 반일회장에게 넘겨주어야겠소. 말이 떠날 때 남은 사료도 몽땅 가지고 가도록 하는것이 좋겠소. 역축이 없이 살아가는 제일 가난한 집에 백마를 주라고 하시오.》

《알겠습니다.》

풍기사령은 이런 대답을 하고나서도 방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머밋머밋하였다.

《어서 나가서 명령을 집행하시오.》

나는 그가 망설이는것을 보고 엄하게 독촉하였다.

풍기사령이 나간 다음 곰곰히 생각해보니 백마를 위해서 내가 너무 몰인정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나는 백마와 마지막작별이라도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쇠빗과 털빗으로 여기저기를 긁어주고 손으로 갈기털을 몇십번이고 쓰다듬어주었다. 그 말과 함께 걸어온 수천리로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를 여겨보던 백마의 눈에서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지고있었던것이다. 나는 놀랐다. 이 애마가 어떻게 나와의 리별을 예감하였을가. 백마는 그때 분명 나의 얼굴에서 자기에게 가해진 선고가 무엇인가를 알고있었던것 같았다.

나는 그때 백마의 비통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채찍맛을 보이면서 아무렇게나 부려먹는 미물들의 세계에도 인간을 감동시키는 미덕이 존재하며 그 미덕은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더 풍부하고 다채롭게 해준다는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백마야, 용서해다구. 너와 나는 오늘 아쉬운대로 헤여져야겠구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것처럼 아픈 리별이지만 이이상 더 너를 타고다니며 호강할수 없지 않느냐. 나를 위해 천신만고를 다한 너의 수고에 대해서는 내 한평생 잊지 않겠다.)

나는 말의 갈기털에 한참동안 볼을 파묻고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은 마음이 허전해서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자신의 체면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공연한 결단을 내리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조차 들었다. 하지만 이왕 내린 결단이니 그것을 철회할수도 없었다. 나는 나의 사랑스런 백마에게 부디 근면하고 살틀한 주인이 차례질것을 바라마지 않으면서 풍기사령의 저녁보고를 기다리였다.

그런데 풍기사령은 저녁시간이 다되여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날이 어슬어슬해질무렵에 오백룡소대장이 밥상을 들고 내앞에 나타나 밑도끝도 없이 용서를 빌었다.

《규률을 위반했으니 저를 처벌해주십시오.》

나는 그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알수 없었다.

《규률을 위반하다니?》

《제가 보고도 하지 않고 목재소를 하나 쳤습니다.》

오백룡은 그 습격의 경위를 성급하게 엮어대기 시작했다.

아침에 나에게서 이웃마을에 백마를 보내라는 과업을 받고 소대로 돌아간 풍기사령은 오백룡을 만나자 여사여사한 지시가 내렸는데 다른 명령이라면 다 집행하겠으나 그 명령이야 어떻게 감히 집행하겠는가고 하면서 무슨 방도가 없겠는지 좀 의논해보자고 하였다.

오백룡은 풍기사령의 말에 동감을 표시하였다.

《대원들이 백마때문에 수고를 하는것이 미안해서 대장동지가 그런 명령을 내리신것 같은데 그 백마를 어떻게 대장동지곁에서 떼여놓는단 말이요. 대장동지는 상기두 배장근통때문에 신고하고계시지 않소. 우리가 사료라도 많이 장만해놓고 강짜를 쓰면 대장동지의 결심이 달라질수도 있으니 풍기사령동무는 말을 이웃마을로 보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곳에 매두어야겠소. 그동안 나는 친화목재소에 가서 사료를 구해오겠소. 내가 어디로 갔다는것은 보고하지 말아주오.》

친화목재소는 소왕청에서 40~5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목재소의 십장들가운데는 오백룡이 아는 사람도 한명 있었다. 이 사람이 목재채벌로 유격구를 들락날락하는 사이에 그와도 낯을 익히게 되였던 모양이다.

오백룡은 5~6명의 대원으로 사료공작조를 뭇고 단숨에 친화목재소를 찾아갔다. 그가 잘 아는 십장은 유격대원들에게 그냥 쌀을 주었다가는 후환이 있을것 같아 그런다고 하면서 차라리 자기네 목재소를 습격해달라고 하였다.

십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오백룡은 보초를 억류하고 목재소의 관리들과 파수병들이 도박을 하고있는 사무실을 들이쳐서 무장해제부터 번개같이 해치운 다음 4~5포대나 되는 귀밀과 콩을 지고 기지로 무사히 돌아왔다.

나는 오백룡이 보고를 끝내자 밥상을 한옆으로 밀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과연 그가 말한대로 백마는 이웃마을의 령세농민한테 가있는것이 아니라 하루종일 내 눈을 속이느라고 대피시켰던 장소에서 돌아와 마구간에 서있었다.

백마는 코김을 크게 내불고나서 감사라도 보내듯 내쪽을 향해 머리를 몇번 주억거리였다.

나는 눈굽이 찡 저려났다. 백마의 존재를 몸가까이에서 느낄수 있는것은 어쨌든 기분좋은 일이였다.

그런데 성미가 백두산곰같은 저 통장머리 큰 오백룡과 풍기사령이 지휘관의 명령을 제멋대로 어겼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사료가 많이 장만되면 자기 상관이 백마를 이웃마을로 보내기로 한 결심을 철회할수도 있을것이라는 제나름의 판단을 가지고 목재소까지 들이친 오백룡의 저 주관과 뻔뻔스러운 배짱은 사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것인가. 저 엄청난 배짱을 싹에서부터 짓눌러버리지 않을 경우 장차 어떤 일이 빚어질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불안감때문에 가슴이 서늘해질 지경이였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

이상한것은 원칙과 조금도 타협할줄 모르고 살아온 내가 이전날처럼 그 원칙을 내세울수 없는것이였다. 털빗으로 잔등을 가볍게 긁어주자 눈물이 그렁해서 나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리는 백마의 모습을 보고난 다음부터는 어째서인지 명령을 집행하지 않았다고 오백룡을 꾸짖고싶은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오백룡이 소처럼 떡 버티고서서 생억지를 부리니 나로서는 백마를 기어코 이웃마을로 보내라고 요구할수도 없었다.

《대장동지, 저를 처벌해도 좋고 강직시켜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 오백룡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백마를 어데도 보낼수 없다는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그는 이런 어마어마한 최후통첩을 하고나서 큰 전쟁이라도 치르고난 사람처럼 씩 하고 코김을 크게 내불었다.

생각같아서는 오백룡을 붙안고 《고맙소!》, 《고맙소!》 하면서 등이라도 두드려주고싶었다. 나를 위한 일이라면 생사를 가리지 않고 불과 물속에라도 뛰여드는 이 대담무쌍한 소대장의 충직성에 나는 한두번만 감탄한것이 아니였다. 그는 까막눈이였던 자기에게 조선말자모를 배워준 사람도 김일성이고 처음으로 세상물정을 알게 해준 사람도 김일성이라고 하면서 나를 친형처럼 따르고 존경하였다.

나도 그를 친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었다. 내가 손때를 묻혀 키운 지휘관이 오늘은 나의 백마를 위해 한몸을 내대여 목재소를 치고 돌아온것이다.

그러나 상관의 승인도 받지 않고 자의대로 사료공작을 나간것은 엄중한 규률위반행위였다. 이것을 용서해준다면 앞으로 더 큰 탈선도 할수 있다. 어떻게 할것인가?

이런 때에 지휘관은 결심을 잘 채택해야 하는것이다.

오백룡은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내 밥상의 국그릇을 내려다보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국이 다 식겠습니다. 어서 드시고 저에게 처벌을 주십시오.》

나는 불시에 눈굽이 확 달아올랐다. 처벌을 달라고 물러가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어째서인지 내 목을 꽉 메게 하였다.

오백룡은 일찌기 소년선봉대시절에 비지깨권총이라는 자작권총을 가지고 온성에 건너가 세관순사를 쏴죽이고 무기를 탈취해가지고온 만만치 않은 경력을 가지고있었다. 식솔이 열일곱이나 되는 가정에서 고생스럽게 자라난 그는 어려서부터 대바르고 의협심이 강하여 동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오백룡은 소년선봉대시절부터 어찌나 유격대원이 되고싶어했던지 《탄피사건》이라는 유명한 사건까지 빚어냈다. 그는 유격대에 입대하려면 믿음직한 보증인이 있든가, 총 한자루쯤 로획해서 보증품으로 바치든가, 하다못해 방치수류탄 같은것이라도 한개 얻어가지고 가야 한다는 소문을 얻어듣고 방금 총격전이 벌어지던 전장에 가서 나무껍질로 바지가랭이를 동여맨 다음 한손으로는 허리춤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탄알과 탄피를 주어서 량쪽바지가랭이에 가득 주어넣었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진땀을 흘리면서 유격대를 찾아갔다.

바지가랭이를 동여매였던 끈을 풀어놓자 한말쯤 되는 탄피와 탄알이 와르르 쏟아져내리였다.

《어때요? 이만하면 나두 유격대에 받아주겠지요?》

오백룡은 우쭐해서 중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중대장의 대답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유격대원들의 입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이보라구 백룡이, 그 탄피는 무엇하려 주어왔나? 그건 총을 쏘고 남은 찌꺼기인데.》

중대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백룡은 탄피도 적을 쏘아잡을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는 자기의 실책을 깨닫자 탄알과 탄피를 따로따로 골라놓았다. 탄알은 수백발 되였다.

이 《탄피사건》은 그가 유격대에 입대하는데 유력한 지참품으로 되였다.

오백룡은 입대후 적들의 《토벌》에 희생된 부모형제들의 복수를 위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그는 입대초기 마음고생을 몹시 하였다. 총소제를 하다가 오발사고를 낸것이 화근이 되여 처벌을 받았다.

그에게 처벌을 준 중대정치지도원은 적들이 파견한 간첩이였다. 동만특위와 현당의 주요직책을 차지하고있는 종파분자들의 신임을 얻어 중대정치일군의 직위에까지 뛰여오른 그놈은 유격대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기 위하여 온갖 책동을 다하였다.

오백룡이 오발사고를 냈을 때 그놈이 적용한 처벌방법은 혁명군대의 규률이나 도덕의 척도로 볼 때 상상조차 하지 못할 비인간적이고 야비한것이였다. 오백룡에게 처벌로 위만군 한개 중대가 도사리고있는 모다니에 가서 토성 한복판에 꽂혀있는 만주국기발을 떼오라고 명령하였던것이다.

이것은 사실 적구에 내려가 모험을 하다가 죽으라는것과 다름없는 명령이였다. 전우들은 모두 오백룡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백룡은 유격대주둔지에서 100리나 떨어진 모다니에 내려가 만주국기발을 떼가지고 무사히 돌아왔다.

정치지도원감투를 쓴 놈은 그후에도 오백룡을 해치려고 악착스럽게 기회를 노리였다. 그놈은 대원들이 식사를 할 때 물에 밥을 말아먹는것까지 문제시하면서 군대는 국도 먹지 말고 마른반찬을 먹어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한번은 중대에서 어쩌다가 암소 한마리를 잡았다. 대원들은 《마른밥, 마른반찬》바람에 속에 털이 날 지경이였는데 오늘 저녁에는 소고기국에 밥을 말아 실컷 먹게 되였다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날도 그 알량한 정치지도원이 나타나 먹지 않던 소고기국을 갑자기 먹으면 설사에 걸릴수 있으니 국을 먹지 말고 마른밥에 마른고기만 먹으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대원들은 그처럼 먹고싶던 소고기국도 먹지 못하였다.

지시를 거역하고 국을 먹은것은 오백룡과 그밖의 대원 한사람뿐이였다. 작식대원으로 일하는 오백룡의 둘째 형수가 그들에게 소고기국을 몰래 가져다주었던것이다. 공교롭게도 오백룡은 병실마당에 있는 나무가리뒤에서 그 국을 먹다가 정치지도원에게 발각되였다. 이 사건은 정치지도원이 그에게 《민생단》감투를 씌울수 있는 언질을 주었다. 전우들이 보증하지 않았더라면 오백룡은 《민생단》루명을 쓴채로 처형되였을것이다.

정치지도원은 그후 간첩이라는것이 판명되여 오백룡에게 처단되였다.

자기를 사지판에 고의적으로 내몬 처벌조치를 두고 원망하는 오백룡에게 또 하나의 처벌을 준다면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의미에서의 상처를 남기는것으로 되지 않을가?

《소대장동무, 동무가 나의 백마를 위해 적구에까지 갔다온것은 고마운 일이요. 그렇지만 규률을 위반한것은 지휘관으로서 두번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엄중한 과오요. 이런 일이 앞으로 또 되풀이돼서는 안되겠소. 동무들의 심정을 잘 알았으니 백마는 다른데 보내지 않겠소. 어떻소, 만족하오?》

내가 이렇게 묻자 오백룡은 벌쭉 웃으면서 《네, 만족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아이들처럼 껑충껑충 뛰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이렇게 몇마디의 지적으로 사건을 간단히 매듭지었다.

백마는 그후에도 나를 위해 충실하게 봉사하였다.

소왕청방어전투가 한창 벌어질 때에 있은 일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그때 적들은 리수구막바지인 황가리골일대에까지 기여들어와 유격구인민들을 살륙하였다. 산과 들과 골짜기는 주검으로 덮이고 살림집들은 모두 재가 되였다.

나는 백마를 타고 비발치는 탄막을 누비며 매일같이 전투를 지휘하였다. 어제 뾰족산에서 방어전을 조직했다면 오늘은 마반산에 가서 적의 돌격을 좌절시키고 래일은 또 리수구뒤고지에서 인민들의 대피를 엄호하는 식으로 동분서주하는 과정에 아슬아슬한 고비도 여러번 넘기였다.

얼마나 많은 탄우가 쏟아졌던지 나의 외투안에 댄 털에까지 불이 달리였다. 외투에 달린 불은 단번에 나를 휘감아버릴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감촉하지 못하였다. 백마가 바람을 맞받아 달리다나니 불붙는 외투자락이 뒤로만 휘날렸기때문이다.

내가 외투에 불이 달렸다고 느낀것은 백마가 바람을 등지고 달리기 시작한 때였다. 불길은 뒤가 아니라 앞으로 날리고있었다. 하지만 나는 벌써 외투를 벗어내칠 시간적여유가 없었다. 달리는 말에서 뛰여내리다가는 바위에 굴러 생명이 위험할수 있었고 심한 타박상을 입을수도 있었다.

이처럼 절망적인 순간에 비호같이 달리던 나의 백마는 움푹하게 패워들어간 눈구뎅이앞에서 속력을 늦추며 슬그머니 앞발을 접고 옆으로 쓰러지는것이였다. 나는 말에서 떨어져 눈구뎅이속으로 굴러들어갔다. 눈속에 파묻혀 몸을 이리저리 굴리는 사이에 외투를 태우고 군복에까지 달렸던 불은 저절로 꺼졌다.

백마의 두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있었다.

백마가 아니였더라면 나는 그날 생명을 건지지 못했을것이다. 설사 생명을 건졌다 하더라도 죽음에 못지 않은 참담한 화상을 면치 못하였을것이다.

나는 그때에도 백마의 뛰여난 감각과 신통력을 두고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내 몸에 불이 달렸다는것을 이 말이 도대체 어떻게 알아챘을가? 도저히 해명할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나는 지금도 그 비결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 백마의 비상한 판단력은 설사 생체적우점에서 찾는다 하더라도 다리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자기 주인을 구조하는 그 놀라운 헌신성은 어디에서 출발점을 찾겠는가.

세상에는 충견애마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것을 충마애견이라는 말로 고치고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백마는 유격구인민의 총애를 받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였다. 백마에 대한 소문은 소왕청주변의 반유격구들과 적통치구역의 인민들속에도 널리 스며들어갔다.

오의성도 그 소문을 듣고는 내 말을 탐내였다.

《김사령, 사령의 그 백마를 50필의 군마와 바꾸지 않겠소?》

내가 반일부대와의 공동전선을 위해 라자구에 담판을 갔을 때 그는 나에게 이런 흥정을 붙이기까지 하였다.

내가 그때 어떤 대답을 했던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여튼 라자구에서 담판이 끝난 다음에도 나는 오사령이 자기것으로 만들고싶어 안달아하는 그 백마를 타고 마촌으로 돌아왔다.

나와 함께 근 2년동안 궂은 길 마른 길 가리지 않고 편자를 갈아대며 수천리길을 달린 백마는 1934년 겨울 소왕청에서 죽었다.

1차 북만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백마는 온데간데 없고 나의 전우들이 만들어주었다는 백마의 무덤만이 쓸쓸하게 남아있었다. 그때의 그 슬픈 심정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애석해하는것을 보고 대원들은 백마를 위해 조총을 울리자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총이나 울려선 뭘하겠는가, 백마는 살아있을 때도 총성속에서 소란스러운 세월을 보냈다, 죽어서나 안식을 맛보게 총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였다. 지금도 백마의 무덤이 왕청 어디엔가 남아있을것이다.

오백룡이 호위총국장으로 일하던 1960년대초에 나는 그와 함께 말을 타고 산책하며 백마에 대한 회고담을 나눈적이 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으나 어제날의 유격대소대장은 백마와 관련된 세부들을 낱낱이 기억하고있었다.

그때의 회고담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작가 송영에게도 알려지고 리기영에게도 알려졌다. 한 군관이 그들에게 백마와 관련한 글을 써달라고 청탁했다는데 그 구체적인 전말은 잘 알수 없다.

그러나 항일전쟁의 불길속에서 태여나 그 불길속에서 일생을 마친 백마는 회상기가 아니라 한폭의 자그마한 유화가 되여 조선혁명박물관에 나타났다. 백마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리기영과 송영을 통해 화가 정관철에게까지 흘러나간것 같았다. 그 유화는 바로 정관철이 생전에 남긴 그림이였다. 오백룡의 간청을 받고 박물관에 나가니 그런 그림이 턱 걸려있었다. 처음에는 화폭에 나와 백마밖에 그려있지 않았다. 그 그림을 보니 백마와 함께 나를 충심으로 받들어온 전령병들과 오백룡의 생각이 나서 그들을 화면에 더 반영했더라면 좋았을것이라는 의향을 표시하였다. 화가는 내 의향대로 2명의 전령병을 더 내놓아 작품을 수정완성하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되여있는 유화이다.

나는 나의 충실한 전령병들과 백마가 그리워질 때마다 이따금씩 박물관에 나가보군 하였다.

80고령이 된 지금에 와서는 추억속에서만 종종 그려볼뿐이다. 그 충실한 백마의 모습이 오늘도 내 눈앞에서 60년전처럼 생생하게 살아움직이고있다.

그 백마가 만일 사람이라면 충신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충신이라는 평가를 받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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